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갈등과 성찰을 그려냅니다. 이 글에서는 길가메시의 여정을 통해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공포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를 고찰합니다.
1. 죽음과 마주한 왕: 길가메시의 인간화 과정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신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가진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친구 엔키두의 죽음을 계기로 죽음에 대한 자각과 공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향한 탐색을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의 길가메시는 폭력적이고 자만심 넘치는 통치자입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신과 겨룰 만큼 자신만만한 인물이었지만, 엔키두가 죽은 후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깊은 슬픔에 빠집니다. 이때부터 죽음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서사 전체를 이끌게 됩니다.
그는 불멸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나고, 불사의 인물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지만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는 실패합니다. 대신 그는 깨닫습니다. 진정한 불멸은 신체의 영속이 아니라, 삶 속에서 남기는 흔적과 인간다움의 실현에 있다는 것을.
이렇게 길가메시의 여정은 신에서 인간으로의 전환, 즉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 고대에서 오늘까지: 인간은 어떻게 죽음을 이해해 왔는가
길가메시가 직면한 죽음의 공포는 단지 고대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인간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하며, 죽음을 극복하거나 지연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 과학과 의학의 발달: 수명을 연장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 기억과 흔적의 저장: SNS, 디지털 유언장 등 디지털 공간에 남기는 흔적
- 유전자 보존과 인공지능 업로드: 인간의식의 불멸을 꿈꾸는 기술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죽음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입니다. 길가메시도 결국 이를 깨닫고 우루크로 돌아가 자신이 만든 성벽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이룬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장면은 죽음을 ‘끝’이 아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출발점으로 전환시키는 상징입니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3. 죽음 이후를 말하기 전에, 삶을 말하라
『길가메시 서사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죽음을 단지 공포나 회피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길가메시는 자신의 불멸을 얻지 못했지만,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태도를 얻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죽음을 피하려는 기술이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무엇을 남기고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되묻는 작품입니다.
길가메시가 신이 되려다 인간으로 돌아온 것처럼,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더 깊고 충만한 인간이 됩니다.
결론: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시작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을 극복하려는 왕의 실패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진정한 삶을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죽음을 더 이상 신화로 감싸지 않고, 의학과 데이터로 분석하지만, 그 본질적 공포와 슬픔은 고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길가메시의 여정은 오늘 우리 모두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 소중하고, 죽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의 가치가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불멸을 꿈꾸지만, 진정한 불멸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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